강릉이야기

줄행랑의 어원을 아시나요?

광화문선비 2023. 8. 7. 22:18

그 옛날 양반집들이 커지면서 그만큼 큰 집을 관리하려면 자연적으로 노비도 늘어나야 하고, 이들이 사는 행랑채 또한 많아지게 됩니다. 일반적인 양반의 한옥은 보통 대문의 좌우에 1~2채의 행랑을 설치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집의 규모가 커지고 행랑채가 들어설 자리가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좌우로 행랑이 줄처럼 늘어서게 되는데 이를 가리켜 줄행랑이라고 합니다.

 

강릉에는 이런 줄행랑을 가지고 있는 한옥들이 많이 있으며 대표적인 것이 선교장입니다. 이렇듯 원래 줄행랑이라는 말은 '세도가 대단한 지역 유지 또는 만석꾼'이라는 일종의 권력을 지닌 부자 개념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줄행랑을 놓다' 혹은 '줄행랑을 부르다'라는 말이 파생되었는데, 이는 권력의 판세가 바뀌거나 가세가 급격히 몰락하여 줄행랑 있는 집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어려운 상태가 되어 버리고 도망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강릉에서는 여행하는 선비가 무료로 행랑에 숙박하면서 보통 숙박비 대신에 시문을 지어 남기는데, 시문도 안짓고 몰래 도망가는 선비들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합니다. 

 

요즘 흔히 사용하는 '36계 줄행랑'이란 표현은 중국에서 전승하여 현대까지 내려오고 있는 병법 삽십육계의 마지막 계책인 주위상이 의미하는 바가 '전황을 잘 읽어 도망치는 것'이기에 '줄행랑을 놓다'와 비슷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강릉선교장을 의미에 두고 제가 시를 지어 보았습니다.

 

선교장 (광화문선비)
 
선교장에 오는 손님 
행랑채에 여장 풀면
나흘이나 닷새를 머물지요
떠나는 손님은 숙박비를
시문으로 대신하지요
오늘도 눈 오는 선교장에
손님이 오셨네요
나흘 전에 오신 손님은
내일도 눈 올세라
먹을 갈지 않네요
주인장은 말없이
저녁상 수저와 반찬의
위치를 바꾸어 놓네요
그래도 안 떠나면
국과 밥을 달리 놓는
제사상을 차리네요
제사상 받은 손님
시문도 아니 짓고
줄행랑을 하네요

 

선교장의 겨울 : 사진작가 김영길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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