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이야기

강릉과 고려시대를 이어주는 것

광화문선비 2023. 8. 9. 18:37

1. 임영관 삼문은 고려시대에 지어진 가장 우수한 건축물 중 하나이다.

임영관 삼문은 강원도 강릉시 용강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1962년 12월 20일에 대한민국의 국보 제51호로 지정되었다. 임영관 삼문은 단층의 맞배지붕으로 3칸 2호의 장중한 형태를 갖춘 우수한 팔각문이다. 문의 기둥은 둥글고, 문의 문살은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임영관 삼문은 고려시대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로, 한국의 건축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 고려시대 강릉대군(江陵大君) 군호를 사용한 왕이 있다.

  • 고려 충숙왕 (1332~1339, 1348~1394)   / 공민왕 (1351~1374)    /     공양왕 (1389~1392)

이들 중 공민왕은 고려의 중흥을 이룬 왕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충숙왕은 고려의 멸망을 앞당긴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양왕은 고려의 마지막 왕으로, 조선의 건국으로 인해 폐위되었다.

 

3. 고려시대 우왕은 강릉에 유배되어 다양한 지명을 남겼다.

 

왕산면, 제왕산, 제왕산성, 어단리 등 강릉의 명칭 중에 강릉에 유배되었던 우왕과 관계된 지역과 산 등의 명칭이 남아 있으며, 일제강점기 한자명칭이 변경되었다가 최근에 복원되고 있다 (旺山面-> 王山面)

 

 

4. 강릉대도호부는 고려시대부터 부여된 강릉의 명칭이다.

 

강릉대도호부는 936년 고려 태조가 강릉을 도호부로 승격시킨 후, 1392년 조선이 건국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강릉대도호부는 강원도와 경상도 북부 지역을 관할하는 행정구역으로, 강릉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강릉대도호부는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지방행정구역으로, 그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높다.

 

 

5. 고려시대 강릉대도호부 관노 이옥(정절공)은 강릉도절제사, 한성부사가 되었다.

 

강릉도절제사 정절공 이옥은 개인적으론 여말선초 名弓(명궁)으로 이름을 떨쳤고 강릉부에서 强弓(강궁)으로 왜구를 섬멸한 공으로 父寃(부원:아버지의 원통함)을 씻고 가문을 다시 일으켰고, 公的(공적)으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 어디까지나 백성의 입장에서 처신하신 愛國愛民(애국애민)의 마음이 깊으신 名將(명장)이요. 明官(명관)이였다.

 

이옥은 고려시대의 노비로, 천민의 신분이었지만 학문과 덕행으로 뛰어났다. 이옥은 1275년(충렬왕 11)에 강릉대도호부 관노가 되었고, 1285년(충렬왕 11)에 한성부사가 되었다. 이옥은 한성부사로 재임하면서 백성들을 잘 보살피고, 훌륭한 정치를 펼쳤다. 이옥의 업적은 고려시대의 역사에 길이 남아 있다.

 

 

6.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괘방산 동쪽 사면에 위치한 고려 시대에 돌로 쌓은 성, 고려성이 있다.

 

강릉고려성(江陵高麗城)은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괘방산(해발 384m)의 구릉 정상부 주변을 한 겹 둘러싼 돌로 쌓은 산성으로, 지리적으로 바닷가에 위치한 해안성인데 강릉지역의 주민들이 바다로부터 침략하는 적들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쌓은 성이다. 

 

강릉고려성은 고기록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축조수법과 수습된 유물을 통해 고려초기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며, 일부 성벽에 보이는 보수흔적으로 볼 때 조선시대까지 계속 유지되어 온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주변의 삼한산성과 함께 강원 영동 지방의 중세 성곽 발달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2003년 1월 18일 강원도 기념물 제7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7. 강릉단오제는 고려시대 때부터 시작돼 1000년을 넘게 이어온 강릉의 대표적인 축제다.

 

강릉에서 단오제가 치러진 첫 기록은 고려시대에 편찬된 <고려사>에 나타난다.  “935년 강릉 사람 왕순식이 왕건을 도와 신검을 토벌하러 가는 길에 대관령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라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데, 이로 보아 고려 초기에 이미 단오제가 개최되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8. 명주성은 고려시대의 강릉에 중심 성곽이었다.

 

 명주성은 통일신라 시대 강릉지역 고대역사의 중요한 역사유적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시대 9주5소경과 관련된 치소성으로의 가능성이 높고 명주군왕 김주원과 관련돼 전해 내려오고 있는 역사성에 비춰볼 때 명주성은 역사문화적으로 매우 가치있는 유적이다. 강릉의 성곽은 예국고성(삼국시대) -> 명주성(고려시대) -> 강릉읍성(조선시대)의 순으로 발전해 왔다.

 

 

9. 역사에서 사라진 인물 왕순식은 강릉의 장군이었다.

 

고려 태조 18년(935) 강릉 출신 왕순식(王順式)이 왕건(王建, 877~943)을 도와 신검을 토벌하러갈 때 대관령에서 치제한 기록이 있어 1000여 년을 두고 신성시되어 온 대관령의 역사를 알 수 있다.

 

10. 강릉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뿌리가 단단한 도시다.

 

신라시대에는 ‘하슬라’라고 불렸고, 고려 · 조선시대 관아인 ‘대도호부관아’가 있을 뿐 아니라 한옥과 적산가옥 등이 잘 보존되어 다양한 시간의 켜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닷가에는 어촌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녹색도시체험센터’ 등 최신식 건물이 생겨 다양한 건축의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하다.

 

#강릉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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