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가운테서 가매싸움하능 근 츰 봤장가"
[ 서울말 ] 가마싸움
[ 강릉말 ] 가매싸움
[ 스크립트 ] 개울가에 놓인 돌다리 위에서 결혼식에 가는 두 가마가 만났을 때 일어나는 일
- 그때거 아매 봄이 막 오구 이랠 저야[적이야].
- 물 복장[복판] 장광[자갈밭]서 천럽으 할라구가매솥[가마솥]으 글드니 이짝[이쪽] 북촌에서 먼 가매[가마]가 돌다리르 근내장가[건너잖는가].
- 갠데[그런데] 저짝[저쪽] 남촌에두 웬늠어 가매가 그늠어 돌다리르 근내장가.
- 어라[얼래], 이래는데 머이[무엇이] 하머[벌써] 두 가매가 돌다리 우[위] 중간쭘에서 맞중이치장가[마주치잖는가].
- 야, 이기 큰일이 아닝가.
- 하머[벌써] 새손[가마꾼]들이 서름[서로] 니거[너가]물러나라구 고래고래 소레기[소리]르 질러 삿대질하미 다구[오기]르 부리능 기야.
- 시상에[세상에], 언눔이 양보하갱가. 지랄 개지랄 전[온통] 지랄하데야.
- 개느라니[그래느라니] 귀경꾼에드거 나그내두 팔짱으 찌구[끼구] 불 귀경[구경]으 하능 기야.
- 이기[이것이] 머이[무엇이] 재밌다 이래는데 하머[벌써] 맨 앞에 새손[가마꾼]들이 가매르 서름[서로] 맞대구 뜨젱이쇠새끼[부사리] 쌈박질[싸움질]하능 그 모넹[모양]이루 내밀미 가매싸움으 하장가.
- 우터삐떡삐떡[비틀비틀] 안 늠어갈라구 하니 머[뭐] 그기[그게] 머 되능가.
- 머이[뭣이] 가매 하나가 찌울명하드니[기우뚱하더니] 자무락질하듯[자맥질하듯] 기양[그냥] 물에 풍덩 하구 빠지는데또 한나두 마주[마저] 풍덩하구 빠지장가.
- 그래 쫓예가서 끈제내미[건져내며] 전 소뎅이[소동]르 쳤장가.
- 이번엔 또 물 백에 나와서 상투구 하투구간에 훌 줴매미[쥐어뽑으며] 우[위] 아레두[아래도] 옰구 머 욕세[욕설]르 딧다[들입다] 퍼대미 치구 박구 곰방[금방] 살인이 날 것만 같장가.
- 본대[본디] 그기[그게] 질[길]으 가드거 서름 맞중이하문[마주치면] 뒈져두[죽어도] 안 피캐준다장가[피해준다잖는가].
- 피캐주문 잘 못 산다구 해서 그한[그렇게] 난개[난리]르 친다장가.
- 즘잖케 타엽[타협]으하등가, 아이문 질[길]으 고기 배지[배] 따듯이반 짝으루 금으 긋구 지[제] 금 안 골루만[고리로만] 딛구 가구 이랜다장가.
- 내 질거레서[길거리에서] 가매싸움하능 그 더러 봐두 물 가운테서 가매싸움하능 근 츰 봤장가.
[ 알아두면 좋은 정보 ]
강릉지방의 전통 결혼식 순서?
혼례의 절차상 맨 처음 과정은 의혼(議婚)으로, 이것은 중신애비를 내세워 양가의 집안 근본, 배우자 성품, 건강, 재산, 학력 등을 알아보는 것이다. 강릉 속담에 “며느리는 낮게 보고 딸은 높게 줘라”고 하는데 이러한 사정은 타 지역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강릉 학산 지역에서는 중신애비를 남성 여성 각각 한 명씩 내세우는데, 중신애비들은 일부러 신부에게 말을 걸어보거나 물 한 그릇을 청하여 태도를 살피기도 한다. 결혼이 성사되면 중신애비에게 옷이나 신발을 선물하고 일정한 금액을 사례한다. 근래는 결혼할 당사자가 먼저 사귀고 부모의 허락을 얻는 경우가 많으나 이 지역에서는 부모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다고 한다. 예서(禮書)에서는 혼인이 결정되면 육례를 갖춘다고 하는데, 순서상 납채(納采), 문명(問名), 납길(納吉), 납폐(納幣), 청기(請期), 친영(親迎)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납채의 과정을 보면, 우선 양가의 결혼이 결정되면 신랑의 생년월일시를 쓴 사주(四柱)를 보내서 약혼의 징표로 삼는다. 사주는 사성(四星)이라고도 하는데 가정이 화목한 사람을 골라 택일하여 청혼서를 보내기도 하고 중신애비를 통하기도 한다. 신랑의 집안에서 사주를 보내면 신부의 집에서 택일을 하여 연길(涓吉)을 보낸다. 강릉의 사주단자는 신랑의 생년월일시를 간지에 맞게 백지에 내려쓰고 왼쪽부터 다섯 번 접어서 봉투에 넣고 봉투는 근본을 세 번 씌우고 싸릿대를 잘게 쪼개 그 사이에 끼운 다음 청홍실로 상하 전후로 길게 늘여 감아 넘기고, 파란색이 겉으로 나오도록 매듭 없이 매는데 이것은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는 월노승(月老繩)이다. 혼례를 올리는 당일 즉 전안례(奠雁禮)를 올리는 날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떠나는 것을 친영(親迎)이라 한다. 친영 때 신랑을 인도하고 대표로 가는 사람을 상객 또는 웃손이라 하며 후행으로 함애비, 새손들이 따른다. 신랑 일행이 신부 마을에 도착하면 사초에 든다. 사초는 사처(舍處)라고도 하며 상객과 신랑이 예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함애비가 함을 드린다. 이때 신부의 집에 와서 “함 들이시오”라고 세 번 외치고 들어가 등 뒤로 함을 얹으면 신부 오빠가 함을 안방으로 가지고 간다. 이 함을 발로 세 번 차고 보자기를 푼 다음 눈을 감고 신부 옷을 꺼내 치마폭으로 감싸 담는다. 옛 속언에 “남자가 장가가는 데는 치마 두 끝만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하나는 함 속의 치마감 끝을 당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부의 치마 끝을 말한다. 관대를 한 신랑은 기러기를 안고 전안청에 이르러 북쪽을 향해 목안(木雁)을 상 밑 땅에 내려놓는다. 이것이 전안례이다. 신랑은 천상배를 네 번 한 다음 돌아서고 마당에 교배상을 차린다. 교배상에 나와서 신부가 재배하면 신랑이 답하여 재배하고 신부가 다시 재배하면 신랑이 읍을 하고 난 후 각기 꿇어앉는다. 상견례가 끝난 다음 술잔에 술을 부어 신부의 입에 대었다가 신랑에게 넘겨주면 다시 보내기를 세 번 하는데 안주는 소매에 밤과 대추를 넣는다. 합근례(合巹禮)가 끝나면 반절을 하고 신랑은 방에 들어가 관대를 벗는 ‘관대벗김’을 한다. 그 다음 신랑은 아버지에게 큰절을 하고 다른 방에서 큰상을 받는다. 당일 신랑은 신부의 집에서 초야를 보내는데 이것은 강릉의 풍속이다. 다음날 아침 신부가 시가(媤家)에 처음 가는 신행을 우귀(于歸)라 한다. 신부의 가마가 집안에 들어서면 소금이나 재, 명주씨를 뿌려 부정을 막고 불을 타넘게도 한다. 신랑은 마구간에 가서 바가지에 담은 국수를 먹고 신부는 대반상을 받는다. 상을 다 받은 후에는 시부모와 일가에게 인사를 드리는 현구고례(見舅姑禮)가 있다. 이것이 끝나면 “알묘한다”며 조상의 사당에 가서 제사를 드린다. 알묘가 끝나면 처가로 재행을 하는데 이튿날 용떡으로 떡국을 해먹고 사흘 안에 재향을 하면 신부 측 마을청년들이 모여서 ‘신랑매달기’를 한다. 신랑매달기는 동상례(東床禮)라 하며 동상, 즉 사위를 맞는 신부집에서 이들을 대접하는 예로서 신랑의 발을 묶어 거꾸로 매달고 발바닥을 때리는 것이다. 신랑을 매달러 갈 때는 왁달계패를 조직하여 왁달계 노래를 부른다. 강릉에서는 결혼을 한 신부가 시가에 가지 않고 친정에 눌러 수개월 또는 반년 이상을 지내기도 하는데 이것을 “여름난다”고 한다. 이때 시집살이할 준비를 하는데 각종 포목으로 옷을 만들고 평생 입을 옷을 짓기도 한다. 이렇게 여름이 지나 가을되면 혼수를 챙겨 일 년이든 반년이든 결혼 후에도 왕래하다가 아주 시댁으로 의농(衣籠)을 싣고 가기도 하였다. 이렇게 준비가 끝난 다음 시댁으로 가는 것을 ‘풋보기’ 또는 ‘풀보기’라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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